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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스타 김영희 별세, 허재와 서장훈도 도왔다.

by 잘나가는 김차장 2023. 2. 3.

농구스타 김영희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농구가 은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세운 전 국가대표 김영희 씨가 1월 31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숭의여고 출신 김영희 씨는 키 2m의 센터로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1984년 LA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농구스타 김영희 별세

특히, LA올림픽에서는 한국 여자 농구가 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활약으로 그는 체육훈장 백마장과 맹호장 등을 받았다. 실업농구시절 한국화장품에서 활약한 고인은 말단비대증 증상(거인병)으로 건강이 악화했으며, 이후 뇌종양, 저혈당, 갑상선 질환, 장폐색 등 합병증으로 오랜 시간 투병을 해왔다.

 

현역시절 김영희의 한국화장품과 박찬숙이 이끄는 태평양 화학의 '화장품업계 라이벌전'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마치 남자농구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맞수대결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당시 관심을 끌었다. 지난 1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청주 KB와 부천 하나원큐 경기 시작에 앞서 고인을 기리는 추모 묵념이 진행했다.

농구스타 김영희(좌), 박찬숙(우)
농구스타 김영희(좌), 박찬숙(우)

4일 오전 8시 30분 부천 다니엘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예정돼 있으며, 빈소는 별도로 차리지 않았다. 그리고, 고인의 투병소식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1년 11월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영상에 소개되면서부터다.

 

당시 고인은 유튜브 채널 '근황 올림픽'에 나와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유튜브 채널에서 그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얼만전 아파서 2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힘든 고비를 많이 넘겼다. 거인병은 장기가 커지는 병이라서 예전에 수술했던 자리에 피가 많이 고여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1986년 아시안게임까지 뛴 후 이듬해 11월에 거인병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훈련도중 반신마비가 오고 앞이 안 보여 실명할 뻔했고, 머리에 큰 혹이 시신경을 누루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4년 LA올림픽을 마치고 왔을 때도 이미 몸이 커진 상태였다며 당시 소속팀 감독님은 살쪄서 온 줄 알았고, 그때만 해도 거인병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때였다.

 

김영희 씨는 또 "하루 15알이 넘는 진통제를 먹었다. 뇌 수술받고 나와 외출할 때면 사람들이 성별을 놓고 때로는 저것도 인간이냐 하며 뒤에서 웃었다"라고 말했다. 또 중학생들이 집으로 와 "거인 나와라"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그녀는 3 ~ 4년 동안 집 밖에 안 나갔으며 불안증과 우울증이 심해져 밤에 영하 15도까지 내려간 추운 날에 난방도 틀지 않고 문을 열어놓고 혼자 울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올림픽 연금 70만 원으로 생활 중이라는 그는 이번 입원으로 병원비가 많이 나왔는데, 후배 농구선수 허재와 서장훈이 응원차 돈을 보내줬다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김영희 씨가 투병하는 동안 많은 농구인들이 그의 쾌유를 바라며 온정의 손길을 보냈다고 한다. 여자농구연맹을 비롯해서, 아까 말씀드린 서장훈과 허재 등 농구인들이 치료비를 보탰고, 문화체육관광부도 특별보조금 100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누군가 했더니, 사진을 보니 바로 알 수 있는 김영희 선수였습니다. 60이란 젊은 나이에 거인병이라는 희귀병으로 돌아가셨다니 안타까움 금할 수가 없네요. 허재님과 서장훈 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 열심히 하시는 모습, 사회에 공헌하는 모습 다 보기가 좋네요. 존경합니다.

아무쪼록 고통 없는 하늘에 가셔서 푹 쉬시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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